[노익희의 정치칼럼] ‘누가 무엇을 걱정하는가? ···’

김성옥 기자 | 기사입력 2017/04/19 [20:04]

[노익희의 정치칼럼] ‘누가 무엇을 걱정하는가? ···’

김성옥 기자 | 입력 : 2017/04/19 [20:04]

▲ 노익희 편집국장     © kefnnews
 주위를 돌아보면 봉사를 생활화 하면서 사는 사람들이 많다. 직업상 그런 사람들에게 ‘왜 봉사를 이렇게 열심히 하느냐’고 물으면 대개 그들은 ‘봉사야말로 지극한 즐거움을 준다’는 대답을 많이 한다.
 
참 고맙고 감사해야 할 일이다. 나보다 남을 더 생각하고 사는 삶이야 말로 최고의 가치가 아니겠는가? 봉사하는 단체의 슬로건들도 ‘초아의 봉사’ ‘우리는 봉사한다’ ‘인도와 공평, 자발적 봉사’ 등으로 자연스럽고 경건해지는 구호들이 많다. 수많은 봉사자들이 이런 보편적인 봉사활동 등을 통해서 나와 우리가, 인류가 어려움을 당할 때 공평하게 자유를 나누다 보니 더 평화로워 질 수 있었던 것이리라.
 
봉사자들 중에는 본인도 어려운 살림살이인데 남을 위해 봉사하는 사람들도 많아 보인다. 우리야 감사하고도 고개를 숙여야 하지만 그들의 가족은 좀 입장이 다를 것이다. 더욱이 배우자의 입장에서 내가정보다 남을 위하는 ‘가장’을 바라보는 시각은 생각보다 차가울 수 밖에 없다. ‘누가 누구를 생각하느냐’고 되 물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경험한 바가 있다면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는 대목이라 생각된다.
 
1000년 전 중국 북송 때의 소동파 선생의 가르침이 새롭게 느껴져 소개해 본다. 선생은 시에서 식자우환(識字憂患)을 제시하며 ‘글자를 안다는 것이 걱정거리가 된다’고 했었다. 이 말은 현대에 이르러서 식자우환(識者憂患)으로 해석돼 ‘지식이 많은 사람이 걱정거리다’로 쓰이기도 한다. 대선을 한 달 앞두고 대선주자들을 비롯해 정치인들이 ‘나라와 민족’을 앞 다투어 걱정하고 있다.
 
이상한 것은 국정논단과 대통령탄핵, 재벌과 엘리트들의 구속 현상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관련된 그 사람들이 그리도 걱정했던 것은 국가와 민족이 아니라 우리들이 모르는 정보와 그들만이 아는 정보를 이용해 현명한 식자(識者)가 아닌 배부른 식자(食者)가 되었다는 명확한 사실이다. 정의는 선한 사람들이 악을 묵인하고 좌시하는 것에서 지켜지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큰 시련을 겪고 난 우리 민족의 현명함은 분명히 새롭게 정의를 세우고 더 크고 넓게 나아갈진대, 정치인을 포함한 식자(識者)들이 그 노릇을 다 하지 않고 식(識)자를 먹을 식(食)으로 생각하고 먹을 생각만 하고 국가와 민족을 지키지 않는다면 어쩌란 말인가?··· ‘무엇을 걱정하기 전에 나를 걱정하고 식자(識者)로의 책무를 다하라'는 말이 될 것이다.
 
현명한 어느 단체에는 당연직으로 ‘노우맨(No man)’이 있다고 한다. 그는 반대해야 하는 당위만을 찾아 노우하는 것이 그의 임무가 되고 리더는 그의 말을 경청해 경우의 수에 대비했다고 한다. 많은 리더들은 미리 부하나 대리인들의 예스 대답을 기다리면서 이렇게 하면 어떻겠냐고 물어 본다. 물론 부하나 대리인들은 예스로 답하고 과장하기까지 한다. 대체 이런 현상은 왜 일어나는 걸까? 우매하기까지 어리석게 생각되지만, 예스맨들의 최후를 목도하면서도 리더들은 왜 아직도 예스를 기대하고 있어야 하는가?
      
노우맨과 악마의 변호인은 상통한다고 볼 수 있다. 유명한 영화배우 키아누 리브스와 알 파치노가 열연한 영화 ‘악마의 변호인’에서는 출세가도를 달리는 변호사가 자신의 제자 여학생을 성추행한 변태교사를 변호하면서 죄책감에 시달리지만, 승소해 종국에는 성공하게 되고 변호인은 그 고뇌로 인해 결국 자살하게 된다. 현실에서 ‘악마의 변호인’은 노우맨을 뜻한다. ‘누가 무엇을 걱정하는가?’ 자신을 늘 돌아보고, 노우를 이야기하는 사람들을 반드시 등용하고, 식자(識者)노릇 제대로 하고 식탐(食貪)없는 리더를  목련이 지는 장미의 계절에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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