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연재-90호] 손용헌 목사의 『네가 왜 거기 있느냐』
손용헌 목사의 신앙간증집
박한진 발행인 | 입력 : 2023/11/03 [09:06]
징계로 하나님의 사랑 안에 있음을 확인하는 증거를 얻었으니 감사하다. 나는 청주에 다녀오면서 야곱이 에서를 만나기 전날 밤에 천사와 씨름하다가 환도뼈 힘줄이 끊어져 절름대는 다리로 에서를 만나던 광경을 생각해 보았다. 그는 비록 다리는 절고 있었으나 심령은 절지 않았고, 마음에는 시온의 대로가 열려 있어 하나님이 자신에게 힘이 되고 위로가 되었을 것이다. 절름대며 걷는 발걸음은 어려웠으나 심령에는 말할 수 없는 기쁨이 있었으리라.
이렇게 은혜를 받고 에서를 만나니 복수하기 위하여 나왔던 에서의 마음이 동생을 사랑하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변하여 야곱의 생명도 건짐 받는 은혜를 입게 된 것이었다. 결딴난것은 육신이요 복 받은 것은 신령한 면이었다. 신령한 은혜를 받고 나가니 육신의 생명도 에서로부터 지켜 주신 것이다.
이렇게 설교로 개척교회를 지원하고 또 본 교회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목사님이 출타 중일 때에는 설교도 하며 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단독 목회는 소원은 있었으나 자신감이 없었다. 그러던 중 어느 해인가 부친의 생신 때 고향에 갔던 일이 있다. 아침 식사를 고향 교회 이 목사님과 함께하고 이야기를 나누는데, 나에게 물으셨다. 왜 신학 공부를 했으면서 목회를 하지 않느냐고. 목회는 하고 싶으나 시력이 없어 자신이 없다고 말씀드렸다. 그랬더니 목사님은 “아닙니다. 시력이 없기 때문에 더 잘될 수도 있습니다” 하시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아! 그래요. 그럴 수 있을까요?” 하고 물었다. 다시 말씀하셨다.
“그럼요! 신령한 세계는 눈을 뜨고 보는 것이 아니잖아요?” ‘그렇다. 그럴 것이다. 그래, 기회가 주어지면 목회를 시작하리라!’ 확신을 가졌다.
신학교 1학년 때의 일이었다. 그때 선배 조 전도사는 나에게 신학을 무엇 하러 하느냐고 물었다. 그래서 나는 성경 배우려고 한다고 대답했다. 그랬더니 “그래, 그럼 그렇지! 목회는 안 돼. 시력이 없는데 어떻게 해. 보는 이도 여러 종류의 책을 보고 준비해야 하는데 시력이 없으니 안 되지” 하는 것이었다. 나는 그의 말에 동의했고 별 불만도 없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할 말을 한 것이다. 그때부터 나는 목회는 못한다는 선입관을 가지고 살았고, 자연히 목회에 대한 자신감을 가질 수 없었다. 그런데 이것이야말로 확신해서는 안 될 선입관이었다.
이렇게 자신감이 없던 나에게 고향 교회 이 목사님이 자신감과 확신을 심어 준 것이었다. 맞다. 신령한 세계는 이 병든 세상을 보지 않을수록 깊어진다. 아니 기도할 때에 눈을 뜨고 하던가! 눈을 감아야 신령계가 보이지 않던가! 내게 기회가 주어지면 목회를 하리라…….
누구든 말 한마디가 사람을 살리고 죽인다는 것을 다시금 기억해야 하리라.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감과 용기를 줄 수 있는 말을 해야 하는 까닭은 말이 실로 원자폭탄의 위력보다도 강한 힘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말 한마디로 낙심에 빠질 수도 있고 용기를 가질 수도 있다. 나는 단독 목회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대전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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