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은몽 작가 특별연재-18호] 「유비의 심장에 조조의 열정을 더하라」

우리 시대 청춘을 위한 삼국지

박한진 발행인 | 기사입력 2019/06/28 [09:53]

[박은몽 작가 특별연재-18호] 「유비의 심장에 조조의 열정을 더하라」

우리 시대 청춘을 위한 삼국지

박한진 발행인 | 입력 : 2019/06/28 [09:53]

 10년 후 누가 성공할지 아무도 모른다


기다림의 시작,
기회를 양보하다


유비는 기다릴 줄 알았다. '한나라 중흥'을 내세우는 유비로서는 자신의 야심을 솔직하게 드러낸다는 것이 애초에 불가능했다. 그는 야심 대신 한나라에 대한 자신의 충성심을 드러내고 원리원칙에 어긋나지 않는 인의(仁義)의 처신을 해야 했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길은 처음부터 평탄할 수 없었다. 남의 것을 취할 수 없으니 오래 기다려야 했고, 기회가 와도 쉽게 자기 것으로 낚아챌 수가 없었다.
서주자사 도겸이 임종이 다가오자 자신의 땅을 유비에게 물려주려 했을 때도 유비는 선뜻 나서지 못했다. 누가 봐도 엄청난 기회였음에도 '남이 불행한 가운데 그 땅을 취한다면 의롭지 못한 일'이라는 이유에서였다.
천하의 부랑아 여포가 기반을 잃고 유비에게 의탁하러 왔을 때도 유비는 아우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여포를 받아들였다가 나중에 낭패를 봤다. 여포가 유비를 배신하고 오히려 유비의 땅을 차지해 버렸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비는 다시 여포에게로 돌아가 자신의 몸을 의탁했다. 굴욕적인 의탁이었지만 유비는 굴욕도 참아냈다. 그리고 유비에게는 그 모든 고생을 함께하는 의형제들이 있었다.

 

1
야망은 감추고 인의를 내세우다
진심본색眞心本色


도원결의를 하고 뚜렷한 근거지가 없던 유비가 처음으로 본격적인 근거지로 삼았던 곳이 중원의 중심인 서주였다. 조조는 서주를 침략했으나 유비와 여포의 방해로 실패했지만 유비는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서주자사 도겸으로부터 물려받았다. 서주 사람들은 인의로운 군자 유비를 지도자로 모시기를 간청했다.

반동탁 연대를 떠난 후 조조가 연주 지역을 중심으로 힘을 키워 나간 데 비해 유비는 공손찬 밑으로 가서 머무르며 작은 고을이나 맡아 세월을 보냈다. 몇 해가 흐르도록 자신만의 기반은 마련하지 못한 채 공손찬의 군대만 훈련시켰다.
"내 나이 이미 서른을 넘겼건만 이룬 것이 없구나. 반동탁을 내걸고 만났던 그때 제후들은 지금 모두 자리를 잡았다. 조조는 연주 지역을 차지했고, 원소는 기름진 기주를 가졌고, 원술 또한 회남을 가졌다. 동문선배인 공손찬 형님은 북방의 여러 군을 거느리게 되었고…. 손견 또한 낙양 궁궐에서 옥새를 취하여 떠나간 후 전투 중에 비명횡사했지만 그 역시 강동 지역에 자리를 잡은 영웅이었다. 그런데 나만 이렇게 떠돌이마냥 살아가고 있구나."
"형님, 우리도 땅을 하나 차지합시다. 땅뙈기가 있어야 뭐 힘을 기르고 대업을 이룰 것 아니요!"
"셋째야, 그것 안 될 말이다. 한나라를 부흥시키겠다는 대의를 품은 우리가 어찌 한나라의 땅을 도적들처럼 빼앗아 가질 수 있느냐?"
"아 그 조조 놈도 원소 놈도 모두 다 제 땅을 가지고 있는데, 황실 종친인 형님이 땅뙈기 하나 가질 권리가 없단 말이오?"
답답한 세월을 참고 있던 유비에게 서주 자사 도겸이 조조의 침략으로 위급한 상황에 처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유비는 가진 군사가 없었기에 공손찬에게 빌리기로 했다. 공손찬은 유비의 의견에 회의적이었다.
"자네는 왜 남의 전투에 끼어들어 피를 흘리려 하는가?"
"한실의 종친으로서 조조가 힘을 길러 나라를 위하지 않고 오히려 서주를 침략하고 어진 군자인 도겸을 죽이려 하니 어찌 보고만 있겠습니까? 비록 군사가 많지 않으나 힘을 보태는 것이 마땅한 도리입니다."
공손찬은 유비에게 보졸 2천을 주겠다고 했다. 그것은 터무니없는 적은 수였지만 유비는 불만 없이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군사는 적게 주셔도 됩니다만 단 한 사람만은 함께 데리고 가고 싶습니다."
"그래? 그게 누군가?"
"상산의 조자룡!"
"조자룡?"
"그렇습니다. 사람들이 여포가 천하제일 맹장인 것은 알지만 조자룡이 여포보다 더 강한 용장이라는 것은 잘 모르지요. 조자룡 하나만 있다면 적은 군사를 가지고도 조조군에게 대항할 수 있습니다."
유비는 공손찬에게서 많은 군대를 얻는 대신 조자룡 한 사람을 얻었다. 얼핏 보면 바보스러운 선택이었으나 유비 인생에서 조자룡은 십만 군사와도 바꿀 수 없는 충신이요 실질적인 힘이 되어 주었다. 또한 관우, 장비를 이어 또 하나의 형제와도 같은 신하를 얻은 것이기도 했다.
"자룡! 우리의 군사로는 지금 서주에 침략한 조조를 이길 수 없네. 하지만 군사를 일으키는 것은 반드시 이기기 위한 것만은 아니네. 전쟁에서 이기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의를 드러내는 것이네. 만약 불의를 의로써 막지 않는다면 세상 사람들은 의가 죽었다고 절망하겠지만 약한 힘을 가지고도 의가 불의에 대항한다면 천하에 정의는 아직 살아있다는 것을 사람들이 깨달을 수 있지 않겠나? 자네와 나는 이제 형제와도 같으니 생사를 함께 하세!"
관우, 장비, 조자룡 등을 앞세워 서주에 당도한 유비는 도겸과 의논하여 먼저 조조에게 서찰을 보내어 조조를 설득해 보았다.
"영존하신 조숭 나리의 일은 '장개'라는 수하 장수의 잘못으로 도겸의 죄가 아닙니다. 아직도 황건적이 나라를 어지럽히고 동탁 잔당들이 활개를 치고 있는 지금, 조공께서는 사사로운 원한은 잠시 접어 두시고 대의를 생각해 주시옵소서."
조조는 유비의 편지를 받은 후 웬일인지 별다른 공격 없이 연주로 군사를 돌렸다. 나중에 알고 보니 여포가 조조가 비운 연주를 공격해서 급히 군사를 돌린 것이었다. 어쨌든 유비의 군자다운 모습에 감화된 서주 자사 도겸은 서주를 유비에게 물려줄 생각을 했다. 도겸은 이미 연로하여 병이 났는데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여겨지자 서주를 지켜줄 후계자가 필요했던 것이다.
"유공, 이 늙은이의 병이 이미 무거워 내일을 장담할 수 없는 지경이 되었소. 유공은 한 황실의 종친으로 인의가 높고 백성을 사랑하는 군자이니 서주의 패인(牌印)을 물려받아 이 서주를 지켜주시오. 내게 아들이 있긴 하나 중임을 감당할 그릇이 못 된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소. 머잖아 조조가 다시 원수를 갚겠다고 공격해 올 것이고 원술, 원소 또한 이 땅을 노리고 있는데 우리 서주를 어떻게 한단 말이오. 유공이 아니면 누가 이 서주를 지켜주겠소?"
그러나 유비는 굴러들어온 복이라 할 수 있는 서주자사 도겸의 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 유비, 오로지 대의를 위해 도우러 왔을 뿐 사심은 없었습니다. 어찌 병환 중에 있는 자사님의 땅을 물려받을 수 있겠습니까?"
유비는 계속해서 도겸의 청을 거절했다. 결국 도겸은 노환으로 죽고 남은 사람들은 다시 패인을 들고 유비에게 간청했다.
"이 패인을 받아주소서. 우리 서주를 지켜주소서!"
관우, 장비는 유비에게 왜 기회를 놓치려 하느냐 하소연했지만 유비는 자기 뜻을 굽히지 않았다.
"어찌하여 형제들이 나를 불의에 빠뜨리려 하는가? 도겸 자사가 죽은 지금 서주를 내가 차지한다면 세상 사람들은 나를 뭐라 하겠는가? 남의 불행을 이용해서 땅을 차지했다고 비난하지 않겠는가?"
유비가 계속해서 인의를 내세운 겸양의 처세를 견지하자 마침내 서주 백성들까지 나서서 서주를 다스려 달라고 외치기 시작했다. 상황이 이렇게 무르익음에 따라 일부 유비의 등극을 반대하는 세력들도 꼬리를 감추었다. 사람들은 더욱 간절하게 유비에게 매달렸다.
"서주 패인을 받아주소서!"
드디어 유비는 본의를 드러냈다.
"알겠소이다! 서주 백성들과 신료들의 뜻이 정히 그러하다면 내 도겸 자사의 뜻을 이어 이 서주를 다스리겠소!"
기름진 수백 리의 땅과 백만의 인구로 풍요로운 땅 서주는 그렇게 유비에게 돌아갔다. 도원결의로 뜻을 세운 지 수년 동안 떠돌이 생활을 하던 유비가 처음으로 근거지를 갖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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