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연재-24호] 손용헌 목사의 『네가 왜 거기 있느냐』

손용헌 목사의 신앙간증집

박한진 발행인 | 기사입력 2023/01/25 [09:37]

[특별연재-24호] 손용헌 목사의 『네가 왜 거기 있느냐』

손용헌 목사의 신앙간증집

박한진 발행인 | 입력 : 2023/01/25 [09:37]

 5) 절망

 

3년여 동안 투병생활을 하다 보니 이제는 몸도 마음도 지쳤고 시력을 회복하리라는 기대는 거의 버린 상태였다. 나뿐 아니라 가족들도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사람이 살다가 이렇게도 될 수 있다니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는 노릇이었으나 더 이상 희망이 없는 바에야 일찌감치 포기하고 돌아서는 수밖에 달리 도리가 없었다.
‘참으로 불행은 남의 일인 줄로만 알았는데, 그래서 몹쓸병에 걸리거나 불구의 몸을 가지고 사는 사람에게는 관심조차 없었고 도움의 손길을 베푸는 것은 상상조차 하지 못할 만큼 무관심했는데, 불행이야 그들의 몫이지 나와는 무관하다고 여기며 살아왔는데 나에게 이런 불행이 현실로 다가오다니……!’


생각하면 너무나도 기가 막히고 믿고 싶지 않았기에 아예 생각을 다른 곳으로 돌려 놓고 몇 년을 지냈다. 절망 중에도 막연한 기대와 여러 가지 치료에 희망을 걸고 하루하루를 지냈으나 결과는 전혀 효험이 없다는 것뿐이었다.
그렇게 여러 해를 흘려 버리는 동안 절망은 점점 깊어만 갔다. 나는 본래 활동적이고 복잡한 생각을 싫어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사람이 왜 살아야 하는지를 고민해야만 하는 사람으로 바뀌고 말았다. 인생이 어디서 왔다 어디로 가며 어떻게 살며 왜 살아야 하는지를 곱씹어 보는, 이를테면 철학적이랄까 종교적이랄까, 인간의 근본을 알고 싶은 막연한 관심에 사로잡히게 된 것이었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신앙적인 문제에는 접근해 볼 생각조차 하지 않고 좁은 두뇌로 여러 가지 잡다한 생각에 골몰했다.


‘인생이 별것인가? 열심히 노력하여 돈 많이 벌고 권세를 잡고 영화를 누리며 잘먹고 잘살다 죽는 것이 인생의 최대 행복이라면 나는 더 살 필요가 없는 게 아닌가. 그래 죽자. 죽으면 모든 것이 다 끝장날 게다. 죽음이야말로 영원한 해답을 얻는 최선의 길이 아닌가? 복잡하게 생각할 것 아무것도 없다. 단지 어떻게 죽는 것이 가장 간편한 방법일까만 생각하자. 이것이 내게 남겨진 마지막 연구 과제가 아니겠는가?’


그러던 중 생각나는 것이 ‘싸이나’였다. 일종의 청산가리로 맹독성 극약이었다. 중학생 시절 겨울방학 때면 이 ‘싸이나’라는 약으로 꿩이나 비둘기를 잡곤 했다. 그때는 극약인지도 모르고 어른들이 하는 것을 어깨 너머로 보고 배웠었다. 지금 생각하면 어린 나이에 끔찍한 짓이었지만, 그때는 약국에서도 아무렇지도 않게 아이들에게 싸이나를 팔았다.


약국에서 탁구공만한 크기의 ‘싸이나’ 약 덩어리를 사가지고 와서 콩을 뚫어 속을 파내고 그 속에 극약 가루를 채운 다음 그 위에 촛농을 떨어뜨려 봉했다. 눈이 오는 날 산에 올라가 꿩이나 비둘기가 잘 앉을 만한 곳에 눈을 쓸어 낸 다음 짚이나 콩깍지를 바닥에 뿌려 놓고 그 위에 방금 수작업으로 만든 ‘싸이나 콩’을 뿌려 놓는다. 그리고 멀찌감치 숨어서 꿩이나 비둘기 같은 날짐승이 오기를 기다리면 되는 것이다.


특히 꿩이나 산비둘기는 콩을 아주 좋아했다. 꿩 같은 경우에는 싸이나를 먹고도 얼마쯤 날아간다. 그래 봤자 100미터 이내이지만 산비둘기는 다르다. 먹는 즉시 거의 그 자리에서 고꾸라지고 만다. 즉시 달려가 주워다가 배를 갈라 창자를 꺼내 버리고 구워 먹으면 되는 것이다.
그래서 ‘그 약이 지금 필요한데, 그때 쓰고 남은 덩어리가 아직도 어디엔가 남아 있을 텐데, 어디에 있을까?’ 하고 열심히 찾아보았으나 허사였다. 그 약만 먹으면 금방 끝인데……!


죽을 마음을 먹고 방법을 강구하던 중 중학교에 다니던 여동생에게 돈을 주면서 평소 잠이 오지 않을 때 먹던 수면제를 사다 달라고 부탁했다. 일일이 사다 먹기 불편하니까 한꺼번에 많이 사다 두면 편할 것이라 설명하고, 여러 약국에서 조금씩 사면 되니까 많이 사오라고 거듭 당부했다. 아티반이라고 기억되는 약이었는데, 동생은 그 약이 무슨 약인지도 모르고 그렇게 해주겠다고 했다. 이제 동생이 그 약을 사오기만 기다리면 되는 것이다. 그날 밤만 지나면 나는 죽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저녁때 동생이 학교에서 돌아왔는데 약을 사왔느냐고 물으니 깜박 했다면서 다시 가서 사와야 되느냐고 반문했다. 그런데 그때 문득 번개처럼 스쳐 지나가는 생각은 죽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아! 이렇게 죽을 수는 없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나는 동생에게 아니라고 말하고 말았다.
그 후 얼마간 죽을 생각이 없었다. 그러나 역시 투병생활은 내가 극복하기에는 너무나 힘겨운 고통이었다. 다시 죽을 방법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물에 빠져 죽자니 물가에 갈 수가 없었고, 목을 매어 죽자니 가족들이 너무 놀랄 것 같고, 여러 가지 생각 중에 세월은 희망도 목표도 없이 흘러가고 있었다. 죽겠다면서 여러 가지 이유를 곱씹어 보고, 죽는 방법을 따지는 내가 비참하고 한심할 뿐이었다.


어느 날 또 죽기를 생각하던 중에 이번에는 동맥을 끊어야 되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러나 집에서 동맥을 끊으면 방안에 피범벅이 되어 가족들에게 욕이 될 테고, 언젠가 바닷가에 갈 기회가 있으면 백사장에 누워 동맥을 끊어야겠다고 결심하고 평소에 사용하던 면도날을 새것으로 준비하여 잘 싸서 주머니에 넣어 두었다. 그리고 기회를 기다렸다. 그러나 그 기회는 다행히 도 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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